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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기타음악의 역사와 기타 명곡 해설.......글 김종만 | 2006년 07월 09일 14시 44분 42초
  이름 : DOUMI | 홈페이지 : http:// 추천수 : 46 | 조회수 : 693  

기타음악의 역사와 기타음악 명곡 10선


 

글 : 김종만

  음악평론가 ·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부회장

 전 한국 클래식 기타 협회 회장.


1 . 기타음악의 역사


기타는 인류와 함께 태어났다고 얘기될 정도로 오래된 악기다. 인류와 함께 변화 · 발전해 오면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해준 동반자가 바로 기타였던 것이다. 슬플 때는 은밀한 시정(詩情)의 악기였고,기쁠때는 쾌활한 노래나 춤의 벗으로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었다. 그만큼 우리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이다.

인간의 흥망성쇠가 있듯, 기타도 굴곡이 많았다. 고대로부터 바로크 시대까지는 악기의 여왕 노릇을 했다. 그러나 '예술에는 한없는 진보와 믿기 힘들 만큼의 가능성이 있다'는 요제프 할의 말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탓일까, 음량이 작다는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8자모양의 기타를 짓눌러 1자처럼 만들어 신음케 했던 시절이 많았다.이러한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다시 8자 모양으로 되살아나 오늘날 최고 장수악기로 빛나고 있다.

간혹 기타의 기원을 원시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설이 있다. 어떤원시인이 바다거북의 시체에 남은 근육 한 줄기를 우연히 풍겨 보았더니 '핑'하는 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이는 기타의 시초로 보는 과장된 설이다. 그러나 기타의 무리 (族)를 좁은 범위로 정해두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즉 겉면에 줄(絃)을 건너 맨 한개의 줄받침 막대나무에 울림통을 부착시켜 뚱김으로써 소리를 내는 악기종류로 기타를 한정하면, 거북의 근육은 물론 하프나 리라, 치터등은 기타 종류에 포함되지 않는다.

역사상 기타족이 처음 나타난 곳이라고 알려진 도시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왕국(B.C.3500∼B.C.1900)에는 이미 기원전 4500년부터 수메리안 판투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2500년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수부아드여왕 하프가 나타났다. 수메르에 이어진 바빌로니아나 이웃 이집트 문명시대에 오면 네페르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악기는 대체로 울림통이 작다.대신 목이 가늘고 긴타입에 속해 있었다. 줄감개는 없으며, 줄은 줄 받침 막대의 맨끝에다 끈으로 매놓았던 것 같다. 뚱김은 피크(pick)의 일종인 플렉트럼으로 적은 줄을 뚱겨 울렸다. 한편 서양문화의 원천인 그리스에서는 리라와 키타라를 많이 즐겼다.

이 악기들은 기타족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키타라라는 명칭만은 매우 중요 하다. 현재의 기타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중세 로마인들이 기원 후 4세기경부터 애용했던 악기는 피디클라로 추정된다. 이것은 줄(績, /fedes)에서 유래된 말이며,'현악기'라는 뜻을 지녔다. 이 피디클라는 피둘라 -> 비둘라 -> 비올라 -> 비웰라로 변해갔다.

비웰라는 활로 켜는 것, 플랙트럼으로 치는 것, 그리고 손으로 동기는 것의 3종류가 있다. 악기 모양은 비슷하고, 원판은 평평하다.짧은 네크를 지녔으며,줄감개가 뒤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줄은 6코스(겹줄)이나, 5겹줄 또는 7겹줄이 있었다

기원후 8세기 초 무렵 사라센의 스페인 침공은 알-우드(Al-ud,나무라는 뜻)와 여기에서 파생된 퀴타라를 도입시켰다. 알-우드는 무어 류트(Moorishlute)이다. 퀴타라는 울림통 원면이 평평한 발현악기다.이 악기의 이입이 기타의 직접적인 선조가 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기타가 서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5세기 4코스 기타가 출현한 이후의 일이다. 코스는 겹줄을 말하는데, 당시는 가장 높은음 줄에만 단현(외줄)을 매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 겹줄을 매었던 습관은 18세기 까지 이어졌다.

악기의 모양은 울림통 양쪽이 가파르지 않게 움푹 파여진 8자형이다.뒤판은 평평하거나 약간 볼록 나왔다. 현재 기타다운 모양새의 악기 모습이 15∼ 16세 기 르네상스 시대에 차츰 나타나게 된 것이다.4코스 기타는 서민의 악기로 큰 환영을 받았다. 일반인에게 널리 애용되어 노래나 춤의 반주악기로서 인기가 대단했다. 이 악기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 널리 보급되었다. 이에 따라 기타에 대한 표기나 발음도 각기 달랐는데 이탈리아의 경우 카타라, 프랑스는 기테르 혹은 기테른, 독일은 구이테르나,영국은 기턴,스페인은 기타라 등으로 불렸다.4코스 기타음악은 스페인의 미겔 푸엔야나, 알론소 무다라, 이탈리아의 멜시오르 데 바르베리, 프랑스의 아드리앙 르로와, 기음 몰라유 등의 대가들이 나타나 발전시켰다.

17세기에 들어서면 5코스 기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무렵 유럽 여러나라에서는 이 기타를 '스페인식 기타'라고 불렀다. 스페인에서는 기타라 에스파뇰라라고 발음했다. 현재는 시대구분의 편의상 바로크기타 라고 부른다.

5코스 기타는 연주하기 쉬워, 대중들에게 인기가 좋았다.주로 라스궤아도주법 (rasgueado:오른손가락을 밀집해 애·약·장·검지 차례로 한번에 내려치는 주법)을 이용했다. 이를 이용해 간단한 코드를 뚱겨줌으로써 노래나 춤의 흥취를 더욱 돋구어주는 반주악기 역할을 했다. 이 기타를 창안하고, 예술적인 악기로 발전시켰던 이가 바로 빈센테 에스피넬이었다.

그는 데시마스(十行八語詩)형을 만들었던 시인이었다. 5코스 기타가 스페인 전역으로 퍼져 나갔던 시기는 17세기 말이었다. 이 무렵 카탈루냐 지방 의사(醫師) 후안 카를로스 아마트가 (스페인 기타와 반돌라)를 출판했다. 오늘날 1596년의 초판은 보이지 않고. 1627년 출판된 것만 전해지고 있지만, 이 책은 해적판까지 합세해 기타보급에 크게 공헌했다.

아마트 교칙본에 앞서 이탈리아의 지롤라모 몬테사르도는 (숫자나 음표 없이 춤곡을 연주할 수 있는 기보법의 새로운 창작)이라는 교칙본을 내놓았다. 1606년에 나온 이 책은 각 화음에 알파벳의 한 글자를 부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편, 1626년 파리에서 출판된 루이데 브리세뇨의 (스페인 기타를 위한쉬운 교본)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소개되어 있다.

'기타와 그 음을 좋아하는 부인이 많다. 기타는 정말 검약(儉約)의 극장이라 하겠다 노래하거나, 뚱기거나, 춤추거나 달리거나, 발을 구르며 추는것도 가능하다. 세레나데를 뚱겨서 열정을 태울수도 있다 담배연기가 있거나 날씨가 덥거나 춥거나 전혀 상관이 없다.음이 틀어져도 간단히 고칠 수 있다. 어쨌 든 능숙하거나 서투르거나 들어서 즐거운 악기이고,배우기 쉬우며 , 일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손에 들고 즐길 수 있다. 이제 모두가 기타를 들고, 기타에 환희와 비수(悲愁)를 의지하고 있다. 임금이든 왕자든 모두가‥‥.'

당시 스페인식 기타를 다루었던 음악가들은 화음만 울려주는 것으로는 만족을 못했다. 폴리포닉한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기도 했다. 라스궤아도 주법과 류트에서 배웠던 푼테아도(punteado:한음 한음 등기는 것) 주법을 교묘하게 섞어 연주하기도 했다. 1629년 이탈리아의 포스카리니는 불협화음을 긍정하는 혁신을 일으켰다.

이 시대의 작곡가들은 포스카리니로부터 시작해서 코르베타,비제를 중심으로 하는 춤곡파와, 그라나타를 대표로 하는 앙상블 속의 바소 콘티누오소로서 역할을 중시하는 파로 나뉘어졌다.이들 외에도 루도비코 론칼리,가스파르 산스, 프란시스코 게라우 등 뛰어난 작곡가들이 많이 나타났다.

17세기 바로크의 5코스 기타는 18세기에 들어와서 얼마동안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프랑스의 프랑수아 캄피온과 산티아고 데 무르시아 무렵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처럼 쇠퇴한 까닭은 고전파시대 흐름에 적응을 못했기 때문이 었다.이 세기의 음악은 다성부에서 단성부로 옮겨갔다. 또 악보상으로도 타불라추어에서 새로운 5선 기보법에 숙달된다는 점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타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제1 쇠퇴기'라 말한다. 이 시기의 끝무렵에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기타리스트가 아닌 일반 음악 작곡가들이 기타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보케리니 ,힘멜,플레이엘,베라르와 롬베르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작품은 거의 기타와 현악기의중주곡이었다. 화려한 현악기의 기교나 가락에 비하면 기타는 너무 단순하고 여했다. 단지 아르페지오로 시종일관하는 반주격이었다.

이들 가운데 보케리니가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다장조의 오브리가토적 기타 협주곡과 다. 라장조의 기타 5중주곡, 마단조의 기타 5중주곡이 제일 유명하며 많이 연주되고 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기타가 다시 일어날 기미가보이기 시작했다.새시대의 선구자요, 5선 악보에 의한 최초의 교칙본을 내놓은 기타 작곡가들이 이같은 흐름을 주도했다. 바로 안토니오 다실바와 페르난도 페란디에레가 그 주인공이다. 또 이 무렵 스페인에서 기타 부활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 음악가가 나타났다. 그는 미겔 가르시아로서 , 바실리오 신부(神父)였다. 바실리오신부는 페데리코 모레티와 디오니시오 아구아도에게 기타를 가르쳤다.모레티는 바실리오의 이론과 주법을 이어받아 정립시켰다. 우선 코스 기타가 아닌 6외줄 기타로 바꾸었다. 그는 1799년(6줄 기타 연주의 원칙)을 내놓았다. 또한 볼로냐 아카데미의 논문에서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6줄 기타는 줄 음맞춤이 편리하다. 가락의 뒤틀림 없이 하나의 명료한 음으로 연주할 수 있다. '

6줄 고전기타는 줄바펌 뿐 만 아니라,악기 자체의 본질적인 개혁도 불러 일으켰다. 우선 울림통이 커졌다. 모양은 두 원 또는 합쳐진 계란형으로 단순했다. 울림 구멍이 커졌다.나무 두께는 얇고 가벼워 연주가 편리했다. 부채꼴 받침나무를 앞판 속에 붙여 현장력을 증가시켰다. 프렛(fret)의 칸을 넓혀 음역이 3옥타브 이상이 되도록 했다. 울림통이 깊어 음도 커졌다.

이렇게 구라파 여러 나라들의 제작 명공들은 서로 앞을 다투며 자기내들이 6줄 기타를 처음 만들었다고 주장했는데, 호세 페르나스에 이어 드디어 안토니오 데 토레스가 근대 표준형 기타를 확립시켜 놓았다.이 성능 좋은 기타로 고전파 기타리스트들은 단성부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고전적인 작곡기법과 악기 특성을 그들.나름대로 연구하여 아름답고 알찬 작품을 내놓아, 19세기 고전파의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당시 활약한 기타리스트로는 이탈리아의 펠리페 그라냐니, 페르디난도 카룰리, 프란시스코 몰리노, 아우로 줄리아니, 니콜로 파가니니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플레이엘, 레오나르트드 칼, 요한 네포무크 훔멜, 스페인의 미겔 가르시아, 페데리코 모레티, 페르난도 소르, 디오니시오 아구아도, 독일의 하인리히 힘멜 등이었다. 이 가운데 이른바 '표현파'를 대표했던 스페인의 소르와 아구아도, 이탈리아의 줄리아니의 활약은 특히 중요하다.

우선 세 사람중 가장 불행했던 소르는 어려서 베네딕트파 수도원인 몽세라 음악 학교에서 기타를 본격적으로 배웠다.그는 나폴레옹을 동경,나폴레옹군에 입대하여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파리에서 계속 작곡과 연주생활을 했다. 소르의 특징은 기타로 대위법을 구분했다는 점이다. 4성의 다성음악은 모든 파트를 상쾌한 화음으로 울려준다. 그의 소품은 불과 24마디로 구성된 곡에서도 균형과 질서가 있다. 곡의 동기 전개,끝맺음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 더욱이 조바꿈에 의해 음 빛깔이 화려하다 그러나 그 말년의 생애는 비참했다. 한편 아구아도는 소르와 반대로 부유했으며 행복했던 스페인 기타리스트였다. 주법도 소르의 손끝파와 반대되는 손톱파였다 그러나 이 두 대가들은 성격과 음악성이 틀렸을 지언정 매우 친했다. 아구아도는 여러차례 파리에 가. 소르와 함께 지내면서 연주 및 이론에 관해서도 토론했다.소르는 아구아도의 우정에 대한 감사 표시로 2중주곡인 (두 친구)를 작곡, 연주하기도 했다 아구아도는 작품수가 적으며 고전·보수적이다. 또한 손톱주법의 작곡자였으므로 매우 섬세하고 정말하며 흥미롭다.

바로 그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마우로 줄리아니가 나타나 기타음악을 꽃 피웠다. 20세 때 이미 이탈리아 최고의 비르투오소가 된 그는,음악의 본고장 빈으로 갔다. 그는 이 곳에서 가장조 협주곡으로 유명해진 뒤,베토벤, 훔멜, 디아벨리 등 유명 음악가들과 친하게 지냈다. 자신의 성격처럼 줄리아니 작품들은 매우 강렬하고 외향적인 개성이 깃들어 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가락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작곡기법 또한 고전파로서 완벽함과 직선적인 결단력을 지녔다.

누구나가 들고 다니면서 기타를 뚱겼던 이 시기에는 많은 음악가들이 기타음악에 합세했다. 베버는 그의 희가극 (아부 하산)에서 두 개의 기타로 두 번째 아리아를 부르게 했다. 또 희가극 (도나 디아나)에서도 기타 2중주를 넣었다.슈베르트는 너무 가난해, 피아노가 없을 때에는 기타로 작곡했다.

기타리스트로는 우에르타와 '기타의 파가니니'라 일컬어진 줄리오 레곤디가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뭇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바이을린의 귀재파가니니 또한 기타리스트로, 기타 특수 주법을 바이올린에 옮겨 명성을 떨쳤다. 플륫과 플래절렛과 기타로만 연주했던 베를리오즈는 그의 저서(관현악 기법)에서 기타를 매우 칭찬했다. 예컨대 (환상교향곡)에서 화음구성은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는 작곡가만 할 수 있다. 그는 (파우스트 8개의 장면)과 (벤베누토 첼리니)에서 기타를 넣었다. 한편 파리의 학생시절 돈이 없으면, 기타 레슨으로 생활했다한다. 그러나 기타같이 음량이 작은 악기로서는 그랜드 피아노가 강적이었다. 아무리 개량되었어도 그랜드 피아노의 출현과 오케스트라의 확장으로 제 2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19세기 후기 낭만파가 쇠퇴할 무렵,기타는 거리의 악사들이나 천한 사람들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다. 기타의 고장 스페인에서조차 떠돌이 집시나 거리악사, 농부들만이 기타를 만졌다.기타리스트가 유명해질 수 있는길은 술집 외에는 없었다.

기타의 이 서글픈 벽을 무너뜨린 은인이 19세기 말에 나타났다. 바로 근대 기타의 아버지 타레가였다. 그는 기타를 콘서트 악기로 부활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테면 전설적인 비르투오소였다.마드리드 음악원을 나온 그는, '기타의 사라사테'라는 칭호를 받았다. 타레가 제자들은 스승을 '기타의 정신적인 피닉스'라 불렀다. 그는 욕심이 없었다. 무대보다는 친구 앞을 좋아했다 농부가 한 알의 밀알을 뿌려 정성을 다하듯. 기타 음악을 개척했다.끊임없는 새로운 테크닉 연구로 아포얀도(apoyando:눌러 풍기기)주법을 개발해 큰 음량을 얻었다. 그의 기타 오리지널 작품들은 좀 더 넓고 형식과 내용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전주곡, 마주르카,연습곡들이 이러한 곡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타레가의 영감과 예술성을 만끽할 수 있다. 비록 편곡 작품일지라도, 세밀히 검토 한 후에 정성을 다했으므로 원곡의 특성을 살려주는 게 그의 특징이다.

타레가에 이어 그의 제자 미겔 료벳트, 에밀리오 푸흘, 다니엘 회르테아는 근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주었다.그러나 그때까지도 기타는 작은 음량과 인식부족으로 보급되지 않아 살롱음악에 불과했다. 타레가와 그제자들이 발전시킨 이상은 더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고비아의 출현은 기타의 이 모든 약점을 일거에 극복하게 했다.선배들이 뿌려 두었던 씨앗을 수확한 것이었다.기타는 수 천년 역사 이래 세고비아에와서야 비로소 예술악기로 진가를 발했다.그리고 황금시대의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다.

"여기 오늘의 세기를 대표하는 두 위대한 예술가가 있으니, 그들은 바로 세고비아와 카잘스다'

라는 클라이슬러의 말이 아니더라도, 세고비아는 기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그는 음악의 한 장르로서 기타를 정착 시켰다. 기타를 예술적인 연주회의 악기로 올려놓은 것이다.이제 기타는 다른 악기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독·중·협주악기가 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세고비아 연주평을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탁월한 연주 능력과 창조정신에 의해 자기 자신의 음악을 잉태시키는 것은 그리 흔치 않으나, 세고비아는 그 한 사람에 속한다. 그리고 그는 그 매개체인 악기의 본질 자체를 바꾸어 버릴 것처럼 보이는 수가 가끔 있다. '

1987년, 기타 5000년 이래 최고 거장 세고비아를 잃은 후 그 후계자들인 브림, 월리엄스, 디아스, 라고야등은 예전처럼 넋두리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세고비아 덕택으로 밝은 앞날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고대로부터 현대의 곡을 소화해 연주하면 될 뿐이다. 또 열심히 후진을 양성하고 정진하면 된다. 왜냐하면 기타는 음악의 한장르로 완전히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2 . 기타음악 명곡 10선


 알폰소 10세(1221 ∼1284)  

< 성모마리아 찬가집 (Cantigas de Santa ma.is)>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중세기는 트루바도르(troubadors, 음유시인)들이 풍미했다. 기타는 이 음유시인들웨게 절대적인 필수악기였다.흔히들 이 악기는 반주만 한 것처럼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를 잇는 감초역할을 했다.

이 책은 카스티에와 레온을 다스렸던 알폰소 또는 현명한왕(El Sabio) 시대에 편찬했다. 여기에는 13세기 중세 음유시인들이 사용한 무어기타와 라틴 기타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그림이 들어있어 기타의 초기 역사를

유추할 수 있다. 이 책은 400여곡의 칸티가를 4권으로 엮은 것인데 모두 성스러운 마리아와 그 기적을 찬양한 곡들이다. 곡상은 매우 아름답고 소박한 맛을 지녔다. 형식은 A·B·A 이다.이 가운데 대표적인 곡은 (성모 마리아의 기적)이다. 기적은 6 절에 걸쳐 적었다.첫 구절은 시편의 예수탄생에 감사하는 마니피카트(magnificat)이다 나머지 다섯 시편은 마리아에서 다섯글자를 따 만든 것이다.


루이스 데 나르바에스(1500 ~ ?)  

< 소를 지켜보라 변주곡(Diferencias sob.e Gu3.dame laB vacas)>

 

르네상스시대는 폴리포닉 음악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기타족의 한 무리인 비웰라(vihuela)가 응성했다. 이 악기는 6코스(겹줄)로 기타와 비슷하다. 또한 예술의 부흥으로 대위법을 고도로 터득한 비르투오소들이 나타났다.

루이스 데 나르바에스는 16세기 스페인의 5대 비뷜리스트로 꼽히는 대가였다.그의 작품은 기타 역사상 최초의 훌륭한 레퍼터리로 평가되고 있다.

1538년 나르바에스는 (음악을 좋아하는 델핀(Delfin. 海龍神)에게 바치는 6권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의 서두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델핀이바다에 빠져 죽게된 리라의 명수 아리온(Arion)을 도와 살려준다는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쓰여 있다 극작가 토머스헤이우드(Thomas Heywood)는 "델핀 등에 올라타 기테른을 퉁기고 있는 신은 아리온이다" 고 강조했다.

이 곡집에는 자유로운 환상곡이 많다. 비웰라 반주의 가곡뿐만 아니라 몇곡의 변주곡도 수록되어 있다. 변주곡은 그 무렵 유럽 최초의 곡이었다. 기법 또한 순수한 기악적 특징을 지녔다.그 가운데서도 당시 서유럽에서까지 널리 유행했던 (소를 지켜보라)는 가장 유명하고 음악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 곡의 특징은 주제가 제시되지 않고, 제1변주곡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박자는 모두 2분의 2박자다.펼침화음의 1변주는 매우 신선하다. 제 2변주는 매끄러운 가요풍이다. 제3변주는 에코의 효과로 음역이 넓고, 4변주는 올림음계에서 절정을 만끽하게 한다.5변주는 곡상이 갑자기 바뀌어 새롭고 신선한 가락으로 나간다. 6,7 변주는 반음계를 서로 교묘하게 넣어 매우 생동감 있게 끝을 맺고 있다


가르파르 산스(1640∼1710)  

< 스페인풍 기타음악교정(敎程)가운데 카나리오스(Canarios) >

 

1674년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첫 출판된 이 책은 17세기 최고 명저로 꼽힌다.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기타리스트들과 애호가 사이에 바로크대표곡으로 풍미하는 것은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기타연주와 연주테크닉의 지식을 많이 얻을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산스는 이 책 가운데서 기타를 여자와 장미로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어느 기타리스트가 단지 한줄로 퉁겨 감동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흔히 악기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기타는 연주 테크닉에 따라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따라서 악기의 결함을 탓할 필요는 없다. '

제1교정은 초보자를 위해 썼다. 제2교정은 바소 론티누오(basso continuo)반주가 붙어있는 곡집으로 연주상 주의점과 자세한 설명이 특이하다. 제3교정은 스페인 기타의 아름답고 미묘한 파사칼리아(pasacallia)의 변주곡들이 실려있다. (카나리오스)는 제1교정 21곡 가운데 11번째 곡이다 원래는 지중해 카나리오성의 고유한 리듬을 가진 춤곡이다. 4분의 3박자 또는 8분의 6박자의 빠르고 경쾌함을지녀 매우 율동적이다. 곡의 리듬이나 가락,테크닉 측면에서 명곡으로 꼽히는 소품이다.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

< 기타 협주곡 라장조 RV93 >

 

(사계)의 작곡자로 유명한 비발디는 600이 넘는 아름다운 곡을 썼던 바로크의 거장이었다. 붉은 머리를 지녀 '붉은 머리의 신부'란 별명을 가졌던 그는 원래 신부였다.그러나 미사 도중 악상(樂想)이 떠오르면 이를 잊어버리지 않기위해 제의실(祭衣室)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정신없이 오선지 위에 작곡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미사 집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주교는 비발디를 고아원의 음악선생으로 보냈다. 사실 비발디 자신은 기타를 위해 작곡한 곡이 없다. 그렇지만 류트나 만돌린곡은 여러 작품이 있다 특히 부모를 잃은 고아소녀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앙증스러운 현악기 작품을 많이썼던 것으로 보인다.

이 협주곡도 원래는 류트를 위한 작품이었다.오늘날 이 곡은 기타로 가장많이 연주되며 , 가장 널리 알려진 명곡이다.첫 악장은 빠른 4분의 4박자의 알레그로다.간드러진 장식음의 총주로 시작해 반복된다. 기타는 현과 서로 주고 받는다. 느린 2악장은 아름다운 가락을 지니고 있다. 전반 8마디 후 반복한다. 전 악장을 기타가 주된 가락을 애조 떤 서정미로 감싼다. 마지막 3악장은 라장조의 8분의 12박자로 빠른 알레그로다.빠른 춤곡풍의 주제와 더불어 화려하게 전개된다. 이 악장에서 기타 파트는 오른손 통정의 기교를 요하기도 한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  

< 샤콘느(Chaconne) >

 

이 곡은 원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제2번인데, 기타로 편곡했다.

사를느는 16세기 스페인에서 생겼던 파사칼리아와 비슷한 춤곡이다. 원곡은 라단조이다. 기타로도 조바꿈을 하지 않고 편곡했다.샤콘느는 전체가 3부분으로 되어 있다. 제1부는 3분음표의 기타 특유의 펼침화음(아르페지오)이 인상적이다 제2부는 고요함으로 시작하여,점점고조 되고 화성적으로 이끌어져 곡 중에서 가장 기타적 이라 볼 수 있다.제3부는 1부와 같이 변주가 계속된다. 후반의 아르페지오는더욱 빛난다. 끝부분의 3잇단음은 왼손운지의 옮김이 많아져 연주하는 데 기교를 요하는곡이다.

1987년 서거한 현대의 거장 세고비아(Segovia)가 기타로 출세하려고 결심했던 젊은 시절,그는 자신의 레퍼터리에 넣을 기타곡의 폭이 넓지 못함을 절실히 느꼈다. 우선 그는 바흐의 류트곡집과 샤콘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등을 손에 넣었다. 그런 다음 그는 이 곡들의 음 하나 하나를 음미하면서 기타곡으로 옮겼다.그 결과 기타 특유의 아름답고 운치 있는 음채색으로 바뀌어졌다. 세고비아가 편곡한 바흐음악은 세계 음악인들을 놀라게 했고, 그 자신은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확인받았다. 세고비아가 편곡·연주한 사를 느를 들었던 토스카니니는 이 곡을 기타로 듣는 것이 더욱 정감을 가지게 한다고 절찬을 했다고 전해진다.

정말이지 이 샤콘느를 듣고 있노라면 세고비아의 아름답고 오묘한 음색과 음악성에 도취되어 무어라고 표현하기 힘든 황흘감을 느끼게 된다.


● 마우로 줄리아니(1781∼1819)   

< 기타 협주곡 가장조 작품 30번 >

 

19세기 고전파 가운데 이탈리아의 줄리아니는 스페인의 소르(Sor)와 쌍벽을 이루었던 대가였다.1806년 줄리아니는 음악의 본고장인 빈으로 갔다. 2년 후인 1808년 4월 3일 레두덴잘 아카데미에서 이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 초연되었다. 줄리아니는 이날 기타를 직접 연주했다. 이 연주회에는 청중의 한 사람으로 베토벤이 참석,줄리아니의 기타에 도취되어 열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베토벤이

"기타는 그 자체가 작은 오케스트라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도 이 연주회에 참석하고 난 후의 일이다.

줄리아니는 300곡에 이르는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협주곡은 모두 3곡인데 이 가장조가 가장 유명하다. 이 곡은(아란후에스 협주곡)과 함께 기타 협주곡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제1악장은 4분의 4박자 소나타 형식이다. 제1주제는 매우 맑고 상쾌하며,우아하다. 제2주제는 서정미에 가득 차있다. 기타는 고도의 기교와 스케일의 펼침화음으로 전개된다.그러므로 매우 빠르면서 화려하다.특히 마지막 카덴차의 멋들어지고 자유자재로운 테크닉은 기타의 진수를 보여준 제2악장은 4분의 3박자 마단조이다. 마치 실연 당한 하소연의 노래와 같이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낭만이 서려있다. 마지막 3악장은 4분의 3박자의 폴로네즈풍으로 자유로운 론도형식의 춤곡이다 활기 띤 즐거움과 리드미컬한 박력을 한껏 즐기는 곳이 바로 이 악장이다. 기타의 발랄한 멜로디도 일품이며 , 아르페지오 역시 마찬가지다.


● 페르난도 소르(1778∼1839)

< 모차르트 요술피리 주제에 의한 서주와 변주곡(Introduction and Variation on a Theme by Mozart) >

 

19세기 황금의 고전파시대의 대가 소르는 스페인 기타리스트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을 신봉했기 때문에 파리로 망명했던 불우한 작곡가였다. 말년에는 인후식도암으로 비참한 생애를 마쳤다.소르의 작품은매우 아름답고 깊은 예술성을 지렸다 짧은 연습곡들에서도 교육의 목적과 음악의 자연미가 균형을 잘 이루고 있다. 그의 환상곡, 큰 독주곡 소나타들은 연주회장에서 자주 선을 보일 정도로 유명하다.

(요술피리 주제에 의한 서주와 변주곡)은 기타 테크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요술피리) 1막 17장 에 나오는 2테너와 베이스의 멜로디를 주제삼아 기타로 편곡한 작품이다 오페라에서 이 장면은 모노스타토스가 새잡이 파파게노를 잡으려 노예들과 노래하며 춤추다 마법의 은방을 소리에 놀라 가버리는 대목이다.

무거운 서주부와 아름다운 주제, 그리고 5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곡이다. 원보는 사장조이나, 기타에서는 마장조로 전조시켰다. 제1변주는 매우 유려한 가락과 기교를 요하는 부분이 많다. 제2변주는 마단조로서 깊고 슬픈 신음같다.3변주에서는 고요하며 감동력있는 읖조림으로 노래한다. 4변주에 들어가면 높고 낮은 3잇단음 뒤 빠른 아르페지오가 매우 기교스럽다.5변주와 코다는 씩씩하고 위엄당당한 승리와도 같아 벅차게 해주는 곡이다.


● 니롤로 파가니니(1782∼1840)  

< 큰 기타 소나타 가장조 >

 

어떤 일화에 따르면, 파가니니는 1801년부터 4년간 자취를 감춘 적이 있다한다 이때 그는 귀족의 미망인 디다부인의 성에 틀어박혀 로맨틱한 도피생활을 즐겼다는데, 물론 그녀는 열렬한 기타리스트였다.

파가니니는 어려서부터 바이올린 뿐 만 아니라 기타 역시 훌릉하게 다를줄 알았다. 그는 애정도피생활 동안 기타와 바이올린을 위한 사랑의 2중주를 애인에게 헌정했다.이동안 6곡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기타 4중주곡을 작곡·연주했다.(타란델라)와 기타 3중주곡. 소나티네, 그리고 26곡의 오리지널 기타 작품도 유명하다 소나타 가장조는 원래 바이올린이 기타를 반주해 주는 곡이다.그렇지만 요사이 대가들은 기타의 아름다운곡상과 기교 때문에 독주로 많이 연주하고 있다. 이 곡의 첫 악장은 톱니바퀴처럼 긴밀한 알레그로로 시작된다. 느린 2악장은 사랑스러운 로망스다.3악장은 좀 느린 점음표가 많은 밝은 주제로 시작된다. 이어 6변주는 갈수록 높은 음역과 화려하게 치달리며 조용히 끝맺음한다.


● 프란시스코 타래가(1852∼1909)  

< 알함브라궁전의 회상(Recuerdos de la Alhambra) >

 

타레가는 근대 기타의 아버지로서 현대 기타 발전의 터전을 닦아 놓은 은인이었다. 그는 필연성에 의한 작곡만을 했으므로.모든 작품이 기타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알함브라궁전의 회상)은 타레가가 그라나다 교외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한 후 작곡했다. 제자인 콘차부인과 같이 갔던 그날밤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던 모양인지, 궁전의 아름다움을 트레몰로(tremolo)주법으로 그려 놓았다.곡은 전반 가단조와 후반 가장조로 반복된다. 코다에서는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인상 깊게 새기며 끝난다.

이 곡은 원래 (알함브라풍으로(A la Alhambra))라고 이름짓고(기도 (Invocation))라는 부제를 덧붙여 놓았는데, 출판사에서(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 고쳤다 한다. 전곡을 은구슬 뿌리듯 관통하고 있는 트레몰로는 매혹적인 이미지를 준다. 더욱이 우수적인 멜로디는 콘차부인과 실연의 아쉬움을 더해주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 호아킨 로드리고(1902∼)

< 아란후에스 협주곡(Concierto de Araniuez) >

 

로드리고는 장님 작곡자로 현대 스페인의 최고 거장이다. 어려운 역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한 그는 파리로 유학,이곳에서 뒤카에게 작곡법을 배운뒤, 엠마누엘과 피로교수에게 음악학 공부를 계속했다.

1939년 귀국한 그는 사인스 델라 마사에게 헌정하는 (아란후에스 협주곡)을 작곡해, 초연함으로써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이(아란후에스) 이외에도 그는 많은 협주곡을 발표했다.

(아란후에스 협주곡)은 (4대의 기타를 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과 함께 그 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1악장은 라스게아도 주법의 도입부로부터 시작한다.이어 강렬한 플라멩코 리듬에 기타와 다른 악기가 민속적인 대화를 주고 받으며 나간다. 2악장은기타 특유의 아르페지오 위에서 우수와 환상에 찬 테마를 잉글리시 혼이 연주한다.기타에 이어진 가락은 더욱 슬퍼진다. 카덴차는 기타의 테크니컬한 표정과 내용을 짙게 담고 있다. 마지막 악장은 빠른 4분의 3박자의 라장조다. 2 ·3박자의 대위법적인 주제로 기타는 흥겨움을,오케스트라는 빠르며 화려함을 한껏 보여준다.


이 글은 전 한국 클래식 기타 협회 회장님이신 김종만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이 글의 인용 혹은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김종만 선생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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